노자 도덕경의 주요 출처들 (백서본, 죽간본, 왕필본)

2025. 5. 5.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국 철학 고전 중 하나이지만, 그 원본 텍스트가 무엇인지, 혹은 어떤 판본이 가장 원형에 가까운지는 오랫동안 학계의 큰 관심사이자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중요한 고대 판본들이 발견되면서 도덕경 연구는 큰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여기서는 도덕경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세 가지 주요 출처, 즉 백서본(帛書本), 죽간본(竹簡本), 그리고 왕필본(王弼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왕필본 (王弼本)

 명칭

왕필본(王弼本). 위진시대(魏晉時代)의 학자인 왕필(王弼, 226~249)이 주석을 달면서 정립한 판본입니다.

 

 특징

  o  가장 널리 알려진 판본

오랫동안 도덕경의 표준 텍스트로 통용되어 온 판본입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도덕경 번역본이나 해설서는 왕필본을 저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o  구조

도덕경을 81장으로 나누고, 처음 37장을 도경(道經)으로, 이후 44장을 덕경(德經)으로 나누는 전통적인 구성을 따릅니다.

 

  o  주석

왕필 자신의 심오한 철학적 주석(《老子注》)이 함께 전해져, 후대 도덕경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o  연대

왕필이 활동했던 시기(3세기 중엽)의 텍스트를 반영합니다. 그 이전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했겠지만, 왕필의 손을 거치면서 정돈된 형태입니다.

 

 의의

도덕경이 중국 철학사에 뿌리내리고 수천 년간 전승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판본입니다. 전통적인 해석과 이해의 근간이 됩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판본은 아니며, 다른 판본들과 비교할 때 문자상의 차이나 어순의 차이가 발견됩니다.

 

2. 백서본 (帛書本)

 명칭

백서본(帛書本). '비단에 쓴 책'이라는 뜻입니다. 발견된 장소를 따서 '마왕퇴 백서본(馬王堆帛書本)'이라고도 부릅니다.

 

 발견

1973년 중국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 마왕퇴(馬王堆)에 위치한 전한(前漢) 시대 무덤 제3호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특징

  o  재질: 비단(帛)에 묵서(먹으로 씀)된 두루마리 형태의 책입니다.

 

  o  두 종류: 같은 무덤에서 내용이 거의 동일한 두 종류의 백서본이 발견되었습니다. 하나는 '갑본(甲本)'이고 다른 하나는 '을본(乙本)'입니다. 을본이 갑본보다 후대에 쓰였고, 왕필본과 더 가깝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o  연대: 무덤이 폐쇄된 시기가 기원전 180년경으로 추정되므로, 이보다 이전에 쓰여진 텍스트입니다. 왕필본보다 약 400년 이상 앞섭니다.

 

  o  구조: 왕필본과 마찬가지로 도경과 덕경으로 나뉘지만, 덕경(德經)이 도경(道經)보다 앞에 나옵니다. (덕경 44장 → 도경 37장) 총 장수는 81장으로 동일합니다.

 

  o  문자: 전한 시대의 예서체(隸書體)로 쓰여 있습니다. 왕필본과 비교했을 때, 일부 글자가 다르거나 어순이 다른 곳이 많습니다. 특히 전한 황제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피휘(避諱) 글자가 사용된 흔적이 있습니다.

 

 의의

왕필본보다 훨씬 오래된 거의 완전한 형태의 도덕경 판본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왕필본이 유일한 전통이 아님을 보여주었고, 도덕경 텍스트의 전승 과정과 변화를 연구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덕경이 도경보다 앞에 오는 순서는 도덕경의 초기 편집 형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3. 죽간본 (竹簡本)

 명칭

죽간본(竹簡本). '대나무 조각에 쓴 책'이라는 뜻입니다. 발견된 장소를 따서 '곽점 죽간본(郭店竹簡本)'이라고도 부릅니다.

 

 발견

1993년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징먼(荊門) 곽점(郭店)에 위치한 전국시대(戰國時代) 무덤 제1호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유학(儒學) 경전들과 함께 묻혀 있었습니다.

 

 특징

  o  재질: 가느다란 대나무 조각(竹簡)에 묵서되어 실로 엮여 있었습니다.

 

  o  연대: 무덤이 폐쇄된 시기가 기원전 300년경으로 추정되므로, 세 판본 중 가장 오래된 판본입니다. 백서본보다도 100년 이상 앞서고, 왕필본보다는 700년 이상 앞섭니다.

 

  o  내용: 도덕경의 전체 내용이 온전하게 다 들어있지 않습니다. 현재 왕필본 기준으로 약 1/3 정도에 해당하는 내용만 포함하고 있으며, 주로 도경 부분과 덕경 일부에 해당합니다. 누락된 부분이 많고, 순서가 왕필본이나 백서본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o  문자: 전국시대 초나라(楚) 지역의 글자체(초계문자, 楚系文字)로 쓰여 있어 해독에 어려움이 따르기도 합니다. 다른 판본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문자 차이와 어구 차이를 보입니다.

 

 의의

현존하는 도덕경 판본 중 가장 오래된 실제 유물로서, 도덕경이 전국시대 중후반기에 이미 상당 부분 형성되어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도덕경의 초기 텍스트 형태와 내용적 변화 과정을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습니다. 백서본이나 왕필본에서 모호했던 구절이 죽간본을 통해 명확해지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4. 세 판본의 관계 및 중요성

 연대 순

죽간본 (기원전 300년경) > 백서본 (기원전 180년경) > 왕필본 (기원후 3세기 중엽)

 

 완전성

왕필본 ≈ 백서본 (거의 완전) > 죽간본 (불완전)

 

 텍스트의 차이

세 판본 모두 문자, 어순, 구절 등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죽간본이 가장 원형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지만, 가장 파편적이고 왕필본과는 차이가 큽니다. 백서본은 죽간본보다는 후대이지만 왕필본보다는 오래되었으며, 둘 사이의 중간적인 특징을 보이면서도 독자적인 특징(덕경-도경 순서)을 가집니다. 왕필본은 가장 정돈되고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판본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판본의 존재와 비교 연구는 도덕경의 텍스트 확정(Textual Criticism)과 초기 형태 연구에 필수적입니다. 각 판본의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어떤 구절이 시간이 흐르면서 추가되거나 수정되었는지, 혹은 초기에는 어떤 형태로 존재했는지 등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글자 몇 개를 맞추는 것을 넘어, 노자 사상의 초기 모습과 그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결론적으로, 왕필본은 전통과 해석의 중심이지만, 백서본과 죽간본은 왕필본 이전의 더 오래된 텍스트 형태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발견으로서 도덕경 연구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이 세 판본을 함께 비교 연구하는 것은 도덕경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작업입니다.

 

 

 

 🔗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에 대하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