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제27장은 도(道)를 따르는 '선함'의 특징은 인위적인 노력이 드러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그 결과 어떤 허점도 남기지 않아 완전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비유를 통해 설명하는 장입니다. 이러한 선함은 만물을 버리지 않고 그 잠재적인 쓸모를 모두 살리는 성인(聖人)의 태도로 이어지며, 심지어 '선하지 않은 사람'조차 '선한 사람'에게는 배움의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심오한 통찰을 제시합니다.

📜 원문 (原文)
善行無轍迹
善言無瑕讁
善數不用籌策
善閉無關楗而不可開
善結無繩約而不可解
是以聖人 常善救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玄妙
📃 원문 의미
잘 행하는(선하게 행하는)은 수레바퀴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잘 말하는(선하게 말하는)은 흠이나 꾸짖을 바가 없다.
잘 세는(계산하는) 것은 셈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잘 닫는 것은 빗장이나 걸쇠가 없어도 열 수 없다.
잘 묶는 것은 끈이나 약속이 없어도 풀 수 없다.
이로써 성인은 항상 사람을 잘 구제한다. 그러므로 버려지는 사람이 없다.
항상 사물을 잘 구제한다. 그러므로 버려지는 사물이 없다.
이를 일러 '내재된 밝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의 배움의 자원이 된다.
그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 자원을 아끼지 않으면,
비록 지혜롭다 할지라도 크게 미혹된 것이다.
이를 일러 '현묘하다'고 한다.
🌲 원문 대역본
善行無轍迹 (선행 무철적)
잘 행하는(선하게 행하는) 것은 수레바퀴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善言無瑕讁 (선언 무하적)
잘 말하는(선하게 말하는)것은 흠이나 꾸짖을 바가 없다.
善數不用籌策 (선수 불용 주책)
잘 세는(계산하는) 것은 셈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善閉無關楗而不可開 (선폐 무관건 이 불가개)
잘 닫는 것은 빗장이나 걸쇠가 없어도 열 수 없다.
善結無繩約而不可解 (선결 무승약 이 불가해)
잘 묶는 것은 끈이나 약속이 없어도 풀 수 없다.
是以聖人 常善救人 故無棄人 (시이 성인 상선 구인 고 무기인)
이로써 성인은 항상 사람을 잘 구제한다. 그러므로 버려지는 사람이 없다.
常善救物 故無棄物 (상선 구물 고 무기물)
항상 사물을 잘 구제한다. 그러므로 버려지는 사물이 없다.
是謂襲明 (시위 습명)
이를 일러 '내재된 밝음'이라고 한다.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고 선인자 불선인지 사)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고,
不善人者 善人之資 (불선인자 선인지 자)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의 자원(배움의 자료)이 된다.
不貴其師 不愛其資 (불귀 기사 불애 기자)
그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 자원을 아끼지 않으면,
雖智大迷 (수지 대미)
비록 지혜롭다 할지라도 크게 미혹된 것이다.
是謂玄妙 (시위 현묘)
이를 일러 '현묘하다'고 한다.
💧 구절별 해설 및 해석 (逐句解說與解釋)
1. 善行無轍迹 (선행 무철적)
o 문자적 의미: 잘 행하는(선하게 행하는) 것은 수레바퀴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o 해설: '善行(선행)'은 '잘 행하는 것', 즉 도에 따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인 도덕적 선행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無轍迹(무철적)'은 '수레바퀴 자국(轍迹)이 없다(無)'는 뜻입니다. 무거운 수레가 지나간 자리에는 깊은 바퀴 자국이 남듯이, 인위적인 힘이나 노력을 들이면 그 흔적이 남게 됩니다.
o 해석: 도에 따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이루어지는 행위는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인위적인 노력이 두드러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이루어지는 완벽한 행위 상태를 비유합니다.
2. 善言無瑕讁 (선언 무하적)
o 문자적 의미: 잘 말하는(선하게 말하는)것은 흠이나 꾸짖을 바가 없다.
o 해설: '善言(선언)'은 '잘 말하는 것', 즉 도에 따라 자연스럽고 진실되게, 때에 맞게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23장의 '希言'(말을 아낌)과도 연결됩니다. '無瑕讁(무하적)'은 '흠(瑕)이나 꾸짖을 바(讁)가 없다(無)'는 뜻입니다. '瑕'(하)는 옥의 티처럼 사소한 흠결, '讁'(적)은 비난, 비판, 꾸짖음입니다.
o 해석: 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은 인위적인 꾸밈이나 속셈이 없어 흠결이 없으며, 진실되고 적절하여 어떤 비난이나 꾸짖음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3. 善數不用籌策 (선수 불용 주책)
o 문자적 의미: 잘 세는(계산하는) 것은 셈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o 해설: '善數(선수)'는 '잘 세는 것', '잘 계산하는 것' 또는 '만물의 수를 헤아리고 도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 계산을 넘어선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不用籌策(불용 주책)'은 '셈 도구(籌策, 계산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不用)'는 뜻입니다. '籌策'(주책)은 옛날 계산에 쓰던 막대기나 주판을 가리킵니다. 인위적인 도구나 복잡한 계산법에 의존하지 않음을 비유합니다.
o 해석: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만물의 본질을 헤아리는 능력은 인위적인 도구나 복잡한 계산법에 의존하지 않고, 도에 기반한 직관과 통찰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4. 善閉無關楗而不可開 (선폐 무관건 이 불가개)
o 문자적 의미: 잘 닫는 것은 빗장이나 걸쇠가 없어도 열 수 없다.
o 해설: '善閉(선폐)'는 '잘 닫는 것', 즉 어떤 것을 안전하게 봉쇄하거나 보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無關楗(무관건)'은 '빗장이나 걸쇠(關楗)가 없다(無)'는 뜻입니다. '而不可開(이불가개)'는 '~이지만(而) 열 수 없다(不可開)'는 뜻입니다.
o 해석: 인위적인 빗장이나 걸쇠 같은 물리적인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도, 너무나 견고하여 어떤 것으로도 열 수 없는 완벽한 봉쇄나 보호 상태를 만드는 것을 비유합니다. 이는 물리적인 힘이나 제도가 아닌, 내면의 충실함이나 본질적인 조화를 통해 진정한 보안이나 안정을 이룰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제54장 참조).
5. 善結無繩約而不可解 (선결 무승약 이 불가해)
o 문자적 의미: 잘 묶는 것은 끈이나 약속이 없어도 풀 수 없다.
o 해설: '善結(선결)'은 '잘 묶는 것', 즉 어떤 것을 튼튼하게 연결하거나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無繩約(무승약)'은 '끈이나 약속(繩約)이 없다(無)'는 뜻입니다. '繩約'(승약)은 물리적인 끈이나, 사람 사이의 약속, 계약과 같은 인위적인 연결을 의미합니다. '而不可解(이불가해)'는 '~이지만(而) 풀 수 없다(不可解)'는 뜻입니다.
o 해석: 물리적인 끈이나 문서화된 약속처럼 인위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도, 너무나 굳건하여 어떤 것으로도 풀 수 없는 강력한 연결이나 관계를 맺는 것을 비유합니다. 이는 도에 기반한 신뢰, 자연스러운 친밀감, 본질적인 조화가 인위적인 계약보다 훨씬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제22장, 79장 참조).
6. 是以聖人 常善救人 故無棄人 (시이 성인 상선 구인 고 무기인)
o 문자적 의미: 이로써 성인은 항상 사람을 잘 구제한다. 그러므로 버려지는 사람이 없다.
o 해설: '是以(시이)'는 '이로써', 즉 앞서 설명된 '흔적 없는 선함'의 원리들 때문에. '聖인(성인)'은 도를 체득한 사람입니다. '常善救人(상선 구인)'은 '항상(常) 사람을 잘(善) 구제하다/살리다/활용하다(救)'는 뜻입니다. 여기서 '救'(구)는 단순히 위험에서 건져낸다는 의미를 넘어, 모든 사람의 잠재적인 가치를 알아보고 그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거나 활용한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故無棄人(고 무기인)'은 '그러므로(故) 버려지는 사람(棄人)이 없다(無)'는 뜻입니다.
o 해석: 도를 따르는 성인은 앞서 말한 물처럼 흐르듯 자연스럽고 흔적 없는 방식으로 행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잠재력과 쓸모를 알아보고 그들을 버리지 않고 모두 살리거나 활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소외시키거나 쓸모없게 만들지 않는 성인의 포용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7. 常善救物 故無棄物 (상선 구물 고 무기물)
o 문자적 의미: 항상 사물을 잘 구제한다. 그러므로 버려지는 사물이 없다.
o 해설: '常善救物(상선 구물)'은 '항상(常) 사물(物)을 잘(善) 구제하다/살리다/활용하다(救)'는 뜻입니다. '故無棄物(고 무기물)'은 '그러므로(故) 버려지는 사물(棄物)이 없다(無)'는 뜻입니다.
o 해석: 성인은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그 잠재적인 가치와 쓸모를 알아보고 버리지 않고 모두 살리거나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제11장에서 '無之以為用'(무지이위용:없는 것으로써 쓰임을 만든다)고 했듯이, 도의 관점에서 모든 것은 나름의 쓰임이 있으며, 성인은 그 쓰임을 실현하도록 돕습니다.
8. 是謂襲明 (시위 습명)
o 문자적 의미: 이를 일러 '내재된 밝음'이라고 한다.
o 해설: '是謂(시위)'는 '이것을 ~라고 부른다'는 뜻입니다. 앞선 성인의 능력('常善救人:상선구인', '常善救物:상선구물')을 가리킵니다. '襲明(습명)'에서 '襲(습)'은 잇다, 물려받다, 익히다, 또는 (옷을 입듯) 덮다, 감추다. '明(명)'은 밝음, 총명함, 지혜, 통찰력입니다. 따라서 '물려받은 밝음', '익힌 밝음', 또는 '감추어진 밝음' 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성인의 지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재되어 있거나 자연스럽게 체득되었음을 시사합니다.
o 해석: 성인이 사람과 사물을 모두 살리고 활용하는 능력은 겉으로 드러나 뽐내는 지혜가 아니라, 깊이 내재되어 있거나 오랜 수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혀진, 마치 감추어진 듯한 '밝음', 즉 심오한 통찰력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입니다.
9.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고 선인자 불선인지 사)
o 문자적 의미: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고,
o 해설: '故(고)'는 앞선 '襲明'(습명)의 상태를 바탕으로 이끌어내는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善人者(선인자)'는 도를 따르는 사람, 성인을 가리킵니다. '不善人者(불선인자)'는 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 세속적이고 인위적인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之師(지사)'는 '~의 스승'입니다.
o 해석: 도를 따르는 '선한 사람'은 말이나 가르침으로 직접 가르치기보다, 스스로 도에 맞게 살아가는 그 모습 자체로 '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배움을 주는 '스승'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제2장의 '不言之教'와 연결됩니다.)
10. 不善人者 善人之資 (불선인자 선인지 자)
o 문자적 의미: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의 자원(배움의 자료)이 된다.
o 해설: '不善人者(불선인자)'는 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善人之資(선인지자)'는 '선한 사람(善人)의 자원/재료/배움의 자료(資)'라는 뜻입니다. '資'(자)는 재물, 자본, 자원, 바탕, 교훈 등을 의미합니다.
o 해석: 도를 따르지 않고 어리석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는 '선하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선한 사람'들에게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어 도에서 벗어난 삶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줌으로써, 스스로를 성찰하고 도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귀중한 '자원'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며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11. 不貴其師 不愛其資 (불귀 기사 불애 기자)
o 문자적 의미: 그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 자원을 아끼지 않으면,
o 해설: '不貴其師(불귀 기사)'는 '(不) 귀하게 여기지(貴) 않는다 / 그(其) 스승(師)'라는 뜻입니다. '不愛其資(불애 기자)'는 '(不) 아끼지(愛) 않는다 / 그(其) 자원(資)'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其師'(기사)는 앞서 말한 '善人'(선인:자신에게 본보기가 되는 스승), '其資'(기자)는 앞서 말한 '不善人'(자신에게 교훈이 되는 자원)을 가리킵니다.
o 해석: 자신이 보고 배워야 할 '스승'(선한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자신이 피해야 할 '자원'(선하지 않은 사람의 잘못된 모습)을 통해 배우고 성찰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12. 雖智大迷 (수지 대미)
o 문자적 의미: 비록 지혜롭다 할지라도 크게 미혹된 것이다.
o 해설: '雖智(수지)'는 '비록(雖) 지혜롭다(智) 할지라도'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智'(지)는 세속적인 지식, 총명함, 똑똑함을 의미합니다. '大迷(대미)'는 '크게(大) 미혹되다/혼란스럽다/방향을 잃다(迷)'는 뜻입니다.
o 해석: 아무리 세속적으로 똑똑하고 지식이 많다 하더라도, 세상 모든 존재로부터 배우고 성찰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의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지혜가 아니며 근본적으로 크게 미혹되어 진정한 길을 잃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13. 是謂玄妙 (시위 현묘)
o 문자적 의미: 이를 일러 '현묘하다'고 한다.
o 해설: '是謂玄妙(시위 현묘)'는 '이것(是)을 현묘하다(玄妙)고 부른다(謂)'는 뜻입니다. 여기서 '이것'은 이 장 전체에서 설명한 도의 원리, 즉 흔적 없는 선함의 효력, 만물의 잠재력 활용, 선인과 불선인의 상호 교훈 관계 등 심오한 이치를 모두 가리킵니다. '玄妙(현묘)'는 깊고 오묘하여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진리를 나타냅니다 (제1장 참조).
o 해석: 흔적 없는 자연스러운 선함이 만물의 잠재력을 살리고, 심지어 선함과 선하지 않음조차 서로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며, 이를 깨닫지 못하면 세속적인 지혜조차 미혹에 불과하다는 이러한 모든 이치는 인간의 얕은 지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깊고 오묘한 진리임을 말하며 장을 마무리합니다.
🌳 전체 해석
스물일곱 번째 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선함과 모든 것의 쓸모를 이야기합니다.
진정으로 '잘 행하는 것'(善行)은 마치 수레가 지나간 흔적처럼 인위적인 노력이 드러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진정으로 '잘 말하는 것'(善言)은 꾸밈이나 속셈이 없어 어떤 흠결이나 비난받을 거리도 남기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잘 파악하는 것'(善數)은 복잡한 계산 도구 없이도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봅니다. 진정으로 '잘 닫아놓는 것'(善閉)은 빗장이나 걸쇠 같은 인위적인 장치가 없어도 아무도 열 수 없을 만큼 견고합니다. 진정으로 '잘 묶는 것'(善結)은 끈이나 약속 같은 인위적인 수단 없이도 아무도 풀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유대를 형성합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흔적 없는 방식으로 도를 행하는 성인은 다릅니다. 성인은 항상 모든 사람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버리지 않고 모두 살려내니, 버려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한 항상 모든 사물의 잠재적인 가치를 알아보고 버리지 않고 모두 활용하니, 버려지는 사물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밝음', 즉 심오한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도를 따르는 '선한 사람'은 스스로 도에 맞게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로 도에서 벗어난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본보기가 되는 '스승'입니다. 반대로, 도를 따르지 않고 어리석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는 '선하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선한 사람'들에게는 반면교사가 되어 도에서 벗어난 삶의 폐해를 보여줌으로써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귀중한 '자원'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본보기가 되는 '스승'(선한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신에게 교훈이 되는 '자원'(선하지 않은 사람의 잘못된 모습)을 통해 배우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지식이 많다 하더라도, 도의 관점에서 볼 때 진정으로 크게 미혹되어 진정한 길을 잃은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선함이 모든 것을 살리고, 심지어 선함과 선하지 않음조차 서로에게 배움이 되는 모든 이치는 인간의 얕은 지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깊고 오묘한 진리입니다.
🌟 제27장의 전체적인 의미와 중요성
제27장은 다음과 같은 핵심 사상을 제시합니다.
- '선함'의 본질: 도가 사상에서 말하는 '선함'은 인위적인 노력이나 꾸밈이 드러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완벽하고 효력 있는 행위(善行, 善言 등)를 의미합니다. '無轍迹', '無瑕讁', '不用籌策', '無關楗', '無繩約' 등의 비유로 이를 설명합니다.
- 성인의 포용과 활용: 도를 체득한 성인은 이러한 '흔적 없는 선함'을 통해 모든 사람과 사물의 잠재적 가치와 쓸모를 알아보고 버리지 않고 모두 살리거나 활용합니다(常善救인, 常善救物). 이는 만물에 대한 도의 포용적 속성을 반영합니다.
- '선한 사람'과 '선하지 않은 사람'의 관계: 선한 사람은 스승이 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자원이 된다는 역설적인 관계를 통해 세상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함을 보여줍니다. 도의 관점에서는 어떤 것도 쓸모없는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 진정한 지혜 vs. 세속적 지식: 세속적인 지식(智)만으로는 진정한 배움(스승과 자원의 활용)을 얻지 못하고 미혹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도에 기반한 근원적인 통찰력('襲明')과 배움의 자세가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 현묘함(玄妙): 이러한 도의 오묘한 작용 방식과 만물의 상호 연결성은 인간의 얕은 지식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현묘한 진리'임을 제시합니다.
제27장은 도가 사상의 무위(無為)와 자연(自然), 그리고 만물의 평등성과 상호 연결성이라는 중요한 개념들을 심도 있게 다루는 장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나 효율성 대신, 자연스러운 방식이 진정한 효력을 가지며, 모든 존재가 나름의 쓸모와 가치를 지니고 서로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심오한 통찰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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